한글 디자인 형태적 특징! 네모꼴이냐 탈네모꼴이냐
로마자 알파벳은 풀어쓰기를 해서 형태적으로 아주 심플하다. 예를 들어 대문자 높이는 어센더 라인에 맞추고 소문자 높이는 X 라인에 맞추고, 아래로 빠지는 소문자는 디센더 라인에 맞춰주면 된다. 로마자 알파벳 폰트를 디자인한다고 하면 이 틀을 기준으로 조금씩 변화만 줘도 새로운 폰트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은 모아쓰기를 하고 받침이 있어서 디자인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한글의 기준선은 너무 복잡해
가로모임일 때 닿자(위 이미지에서 ㅇ)의 윗선과 중심선, 밑선은 세로모임일 때 닿자(위 이미지에서 ㄹ) 선과는 전혀 다르며, 섞임모임일 때 닿자(위 이미지에서 ㅁ) 선과는 중심이 다 달라진다. 그러니까 로마자 알파벳은 베이스 라인을 기준이 되지만, 한글에는 기준이 되는 선이 글자마다 바뀐다.
한편 홑자도 기준선을 잡으면 가로모임일 때 홑자(위 이미지에서 ㅏ)의 윗선과 밑선, 중심선은 세로모임일 때 홑자(위 이미지에서 ㅗ) 선과 다르며, 섞임모임일 때 홑자(위 이미지에서 ㅘ) 선과 또 다르다. 닿자와 홑자가 합쳐진 글자에서 기준선은 도대체 어디로 잡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한글 디자인의 복잡성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냥 가로모임인 한글에 받침이 들어가면 닿자와 홑자의 기준선은 또다시 달라진다. 이런 한글의 특징 덕분에 한글은 로마자 알파벳처럼 어센더 라인, 디센더 라인, 베이스라인, X라인이라는 틀을 잡기가 어렵다. 잡더라도 매우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한글 디자인이 복잡해진 이유는 원래 한글은 세로쓰기로 디자인 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이나 한자 같이 세로쓰기로 디자인 글자의 경우 너비가 일관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세로선을 기준으로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자 알파벳은 글자의 높이가 베이스 라인을 기준으로 잡혀 있다(반면 너비는 제각각이다).
세로쓰기를 하던 글자를 가로쓰기로 바꿔 놓은 상태에서 가로선을 기준으로 디자인하려니 난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한글 디자이너의 해답은 네모꼴과 탈네모꼴 스타일이다.
네모꼴과 탈네모꼴 한글 폰트
디자인적으로 가장 안정감 있는 한글 폰트 스타일은 바로 네모꼴이다. 모아쓰기와 받침이라는 한글의 기본구조는 무시하고 모든 글자를 오직 윗선과 밑선에 맞춰 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네모꼴 한글폰트는 배달의 민족 도현체다. 네모꼴은 한글의 구조적 특징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네모 안에 글자가 다 들어오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일관성과 안정감이 있다.
두 번째 한글 폰트 스타일은 탈네모꼴이다. 로마자 알파벳이 베이스 라인에서 디센더 라인에 소문자가 아래로 빠지는 공간을 만들어 둔 것처럼 한글의 기본구조를 고려해 받침이 들어갈 공간을 고려해 설계된 폰트 스타일이다. 한글의 기본구조를 생각한다면야 탈네모꼴 폰트가 최고지만 밑으로 공간이 들쭉날쭉해서 디자인적으로 지저분해 보이고 글자자체가 길어진다. 뿐만 아니라 로마자 알파벳처럼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시선이 가지 않고 위아래로 분산되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사실상 오늘날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폰트 스타일.
이미 한글을 자주 쓰고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이 보기에는 네모꼴 한글 폰트가 훨씬 더 편하다.
최근에는 탈네모꼴도 바뀌고 있다. 글자의 기준을 무조건 윗선이나 밑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중심선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한글의 구조적 특징을 살리면서도 가독성도 생기게 된다. 이를 중간네모꼴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다. 위 나눔손글씨 붓체를 보면 중간을 기준으로 정렬해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탈네모꼴 한글 폰트는 아직 전문가와 디자이너들이 많이 연구하고 있으니 한글의 구조적 특징과 디자인적 간결함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한글 폰트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by A-PARK